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문단 편집) ===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청혼한 모차르트? === 6살의 모차르트는 1차 연주여행에서 당시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장이었던 [[마리아 테레지아]]의 [[호프부르크|빈 궁정]]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장난을 치다 넘어지자 모차르트보다 1살 많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 [[마리 앙투아네트|마리아 안토니아 공주]][* 흔히 알려진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어]] 이름이고, 원래 오스트리아인이므로 본명은 [[독일어]]로 '마리아 안토니아'였다.]가 일으켜 세워주었다고 한다. 이때 모차르트는 대담하게 공주에게 '''청혼을 했다'''고 한다. 혹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더니 당돌하게 "공주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더 큰 후에 보자"고 했다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청혼했다는 이야기는 어린 모차르트의 당돌하고 조숙한 귀여움을 보여주는 일화로 유명하지만,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마리아 테레지아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나중에 보자고 답해줬을 가능성은 낮다. 당시 [[유럽]]의 [[귀천상혼]] 관습에 따르면 왕가의 자식은 일반 귀족과도 안 되고, 오직 다른 왕가의 자식과 결혼해야 했다. 그런데, 봉신 영주나 가신도 아닌 평민 남성과 [[공주]]의 결혼이라는 건... 다른 국가들의 외교적, 정치적 조롱을 감당해야 하며, 왕가의 [[공주]]가 격이 맞지 않는 결혼을 했다는 데 대한 국내 귀족들의 격렬한 반발(심하면 반란)까지 감당해야 하는 일이 된다.[* 귀천상혼은 국가 차원에서 성문법으로 금지하던 것은 아니었고 가톨릭 교리상으로도 문제될 것이 없지만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위'로 엄청난 조롱과 치욕을 각오해야 했다.] 게다가 당시 왕족급의 귀족들에게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절대 아니라 일종의 사업이자 정치였다. 정략결혼은 오늘날에도 동서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현대의 경우에 이런저런 차별이 실존한다 해도 일단은 '모든 인간의 평등'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받아들여지는 것과는 달리, 근세 [[유럽]]에서는 격에 맞지 않는 결혼([[귀천상혼]])은 아예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여겨졌음을 명심하자. [[마리아 테레지아]]는 당시 자신의 아들이 악단을 꾸리자, '돈도 없는데 그런 짓을 왜 해'라고 편지를 보냈다. 정치적인 이야기지만, 당시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과의 국제전쟁과 검소한 성품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긴 통치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긴축재정을 실시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냥 [[마리아 테레지아]]가 당시 고작 여섯 살짜리 꼬마였던 모차르트의 귀여운 제안에 장단을 맞춰준 것에 가까울 것이다. 굳이 귀천상혼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정도 나이대 어린아이의 당돌하고 귀여운 청혼엔 누구라도 장난으로 대응했을 것이다. 애초에 일국의 왕이 꼬마아이가 멋모르고 하는 말에 정색하는 것도 웃긴 일이고,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 정도 도량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